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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26년까지 미국 정부 부채는 32조 달러 늘었는데, 같은 기간 GDP 증가분은 19조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 숫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도 잠깐 멈칫했습니다. 부채가 성장을 앞지르는 속도가 이 정도면, 연준의 금리 결정만 쫓아다니던 과거의 제 투자 방식은 사실상 지도 없이 길을 찾던 셈이었습니다. 유동성의 진짜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부터 제가 직접 겪으면서 정리한 관점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연준만 보다 놓친 것: 재무부가 유동성을 움직인다
2023년, 연준은 금리를 올리고 양적 긴축(QT)을 이어갔습니다. 여기서 양적 긴축(QT)이란 연준이 보유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시장에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를 중단하여 시중의 돈을 흡수하는 과정입니다. 교과서대로라면 자산 시장은 식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술주와 성장주가 상당히 견조하게 버텼고, 저는 그 이유를 한참 찾아야 했습니다.
그 답이 역레포(RRP) 잔고 변화에 있었습니다. 역레포(RRP, Reverse Repurchase Agreement)란 금융기관이 연준에 현금을 하루짜리로 맡기고 이자를 받는 구조로, 쉽게 말해 은행들이 시중에 돈을 내보내지 않고 연준 창고에 쌓아두는 파킹 계좌입니다. 2021년 이후 이 계좌에는 최대 2조 달러 넘는 돈이 쌓였고, 옐런 전 재무장관은 이 자금을 시장으로 끌어내는 방식으로 연준의 긴축을 사실상 상쇄했습니다.
제가 직접 데이터를 추적해보니, 연준의 지급준비금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역레포 잔고가 빠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연준이 유동성을 흡수해도, 재무부가 이 역레포 자금을 단기채 발행 등으로 시장에 내보내면서 순 유동성은 실질적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어났던 것입니다. 연준의 대차대조표만 보고 시장을 판단했다면 2023년 장세를 완전히 잘못 읽었을 겁니다. 저도 한동안 그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현재 베센트 재무장관은 이 흐름을 더 적극적으로 제도화하려 합니다.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규제 완화가 그 핵심 중 하나입니다. SLR이란 은행이 보유 자산 대비 일정 비율 이상의 자기자본을 쌓도록 강제하는 규제인데, 이 규제에서 국채를 제외해주면 은행은 국채를 더 많이 보유하면서도 대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미 한 번 쓴 카드입니다. JP모건이 현금 유동성 자산 비율을 13%에서 6.5%로 절반 가까이 낮춘 것은 이런 정책 기조를 먼저 읽고 움직인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변화가 완전히 시장에 반영되면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자금이 새로 풀릴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옵니다(출처: 미국 재무부 공식 사이트).
- 역레포(RRP) 잔고 감소 → 시중 단기 유동성 공급 증가
- SLR 규제 완화 → 은행 대출 여력 확대 → 광의통화(M2) 증가
- 장기 국채 발행 축소 + 단기 국채 확대 → 장기금리 상승 압력 분산
- 스테이블코인 확장 → 단기 국채 수요 추가 확보 (현재 3천억 달러 → 2~3조 달러 목표)
AI가 없으면 이 각본은 성립하지 않는다: 장기금리와 투자 전략
미국이 지금 시도하는 것은 한마디로 '성장으로 부채를 희석하는 전략'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패권 국가도 명시적으로 부채를 줄인 적이 없었고, GDP 대비 부채 비율을 낮추는 유일한 방법은 분모인 GDP를 더 빠르게 키우는 것뿐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단순히 돈을 더 푸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돈만 풀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튀고, 10년물 국채 금리가 올라가고, 결국 부채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여기서 기대 인플레이션이란 시장 참가자들이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지 예상하는 수치로, 실제 물가 상승률과는 다릅니다.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에는 이 기대 인플레이션이 핵심 구성 요소로 포함됩니다. 연준이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도 실제 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지보다 기대 인플레이션 자체를 심리적으로 억누르기 위한 측면이 크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실질 성장은 어디서 만들어야 할까요. 이 지점에서 AI가 등장합니다. 과거 1940~70년대 미국이 산업 성장으로 대규모 전쟁 부채를 흡수했듯이, 지금 AI 산업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시나리오입니다. 단순히 주가가 오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과거 인터넷 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광통신망에 돈을 쏟아붓던 초기에는 생산성 지표가 별로 안 나왔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자 폭발적인 GDP 성장이 뒤따랐습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금 그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게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투자 관점에서 제가 주목하는 변곡점은 9월 국채 바이백과 4분기 QRA(분기별 국채 발행 계획) 발표입니다. 바이백이란 재무부가 이미 발행된 장기 국채를 시장에서 되사들이는 조치로, 장기 국채 공급을 줄여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직접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이 타이밍에 장기 국채 발행 축소와 은행 규제 완화 시그널이 겹친다면, 그동안 빅테크와 반도체 소수 종목에 쏠렸던 자금이 중소형 성장주로 퍼지는 브로드닝(Broadening) 현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브로드닝이란 소수의 대형주에 집중되던 수급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국면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공포에 압도되어 포트폴리오를 전부 현금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실제 영업이익이 버텨주는 AI 연관 기업들은 매번 그 공포의 저점 부근에서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핵심은 연준의 금리 발표 전날이 아니라, 재무부의 바이백과 QRA 발표 직후 장기금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제 기준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10년물 국채 수익률 4.8%는 현재 재무부가 사수하려는 방어선으로 보이며, 이 선이 유지되는지 여부가 시장 전체의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데도 주식 시장이 버티는 이유가 뭔가요?
A. 연준의 양적 긴축으로 빠져나가는 유동성을 재무부가 역레포 잔고 축소와 단기 국채 발행 확대로 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 유동성, 즉 실제로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의 양은 연준 대차대조표만 봐서는 파악이 안 됩니다. 재무부의 움직임을 함께 봐야 그림이 완성됩니다.
Q.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금리랑 무슨 상관인가요?
A.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준비자산으로 단기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합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현재 3천억 달러에서 2~3조 달러까지 성장하면 그만큼 단기 국채에 대한 안정적인 수요가 생깁니다. 재무부 입장에서는 장기채를 덜 발행해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클레러티 법안이 이 흐름의 핵심 기폭제입니다.
Q. 지금 AI 관련 주식 사도 되나요, 너무 고평가 아닌가요?
A. 단기 주가 레벨보다는 해당 기업이 고금리 환경에서도 실제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지, 그리고 시중 유동성이 풀릴 때 그 자금을 담을 수 있는 사업 구조인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미래 이익을 기대하고 올랐던 기업과, 지금 이미 이익이 나면서 유동성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기업은 완전히 다른 리스크 프로파일을 가집니다. 장기금리 안정 시그널이 확인된 후 비중을 늘려도 늦지 않습니다.
Q. 브로드닝이 시작됐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지표는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의 방향성입니다. 여기에 은행 규제 완화 발표나 QRA에서 장기 국채 발행 축소 신호가 겹치면 브로드닝의 구체적인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빅테크와 반도체 종목의 수급이 중소형 AI 인프라 관련주로 이동하는 흐름이 차트에서 동시에 나타나면 확인이 됩니다.
결론
제가 이 사이클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연준을 보지 말고 재무부를 보라"는 관점의 전환이었습니다. 연준의 매파적 발언이 시장을 흔들 때마다 반사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줄이려는 충동이 생겼는데, 막상 재무부가 수면 아래서 무엇을 준비하는지를 함께 보기 시작하자 그 충동을 상당 부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국면의 핵심 변수는 세 가지입니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4.8% 방어선을 지키는지, 재무부의 바이백과 QRA에서 장기채 발행 축소 신호가 나오는지, 그리고 은행 규제 완화가 실제 광의통화 확대로 이어지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 시그널 중 두 가지 이상이 확인되기 시작하면, 저는 그때를 비중 확대의 기준점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거시 유동성 흐름을 읽는 렌즈를 넓힌 것이 결국 이번 사이클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