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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리언 그레이 : 추구미, 자의식 과잉, 도리언 그레이, 나르시시즘

by 예몬드 2026. 8. 21.

나르시시즘

 

 

SNS 프로필 사진 하나를 고르는 데 몇 시간을 쏟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꽤 오래된 기억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몇 시간은 사진을 고른 게 아니라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나'를 설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의식 과잉은 단순히 예민한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면을 외면한 채 껍데기만 다듬는 삶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오스카 와일드는 130여 년 전에 이미 소설 한 편으로 보여줬습니다.

 

추구미라는 이름의 자의식 설계도

"자화상을 그려준다면 어떤 모습을 담아주길 바라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 자신보다 '더 부드럽고, 더 신비롭고, 더 클래식한' 모습을 원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실제 본인이 그렇게 생긴 것과 무관하게 그렇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초상화가 정중원 작가는 의뢰인을 처음 만날 때 "어떻게 보이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인테리어 색깔까지 파악하면서요. 그 질문 하나가 사람의 자의식 지형도를 드러낸다는 겁니다. 저 역시 대학 시절 SNS 프로필 사진을 고를 때 완벽히 보정된 이미지만 올렸는데, 그게 바로 제 나름의 '추구미'를 설계하는 행위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카라바조의 유디트처럼 잔인하면서도 결연한 아름다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처럼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현재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혹은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자아를 투영한다는 것. 이 욕망 자체는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문제는 그 욕망이 현실의 자신을 얼마나 옥죄느냐입니다.

 

도리언 그레이가 보여준 자의식 과잉의 끝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890년에 발표된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입니다. 특히 1890년 판본은 동성애 묘사 등 당시 검열로 삭제된 내용이 복원된 버전으로, 원작이 의도한 심리적 밀도를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구조는 간단하지만 묵직합니다. 화가 바질은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완성합니다. 헨리 경은 도리언에게 쾌락주의(Hedonism)를 주입합니다. 여기서 쾌락주의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적 경험이 최고의 선'이라는 철학으로, 헨리 경의 버전은 특히 냉소적이고 극단적입니다. 도리언은 자신의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소원을 빕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뤄집니다. 초상화가 그의 죄와 노화를 대신 짊어지는 방식으로요.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섬뜩하게 느꼈던 장면은 도리언이 악행을 저지른 뒤 초상화의 변화를 발견하고 그걸 다락방에 숨겨버리는 대목이었습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얼굴은 여전히 완벽하게 아름답고, 내면의 추함은 철저히 은폐합니다. 제가 SNS에 올리던 보정된 사진들과 다를 게 없는 구조였습니다. 현실의 나를 어두운 다락방에 가둬두는 것이죠.

오스카 와일드는 바질을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헨리 경을 '세상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 도리언을 '내가 되고 싶은 존재'로 정의했다고 전해집니다. 세 인물이 사실 한 사람 내면에 공존하는 층위라는 해석인데, 이 틀로 보면 소설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란 개념, 즉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외부 검증에 의존하는 심리적 패턴이 도리언이라는 캐릭터 안에 정확히 포착되어 있습니다.

 

나르시시즘 시대, 자의식 과잉은 병인가 무기인가

과거에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르시시스트의 위험성이 더 부각되는 분위기입니다. 출처: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 따르면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는 과대한 자기 중요감, 공감 능력 결여, 지속적인 찬사에 대한 욕구를 핵심 특징으로 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특별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타인을 착취하는 수준까지 이르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자의식 과잉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는 점입니다. 연극 활동을 하는 초상화가 정중원 작가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며 "캐릭터들의 겹을 다 합치면 그게 곧 나"라는 방식으로 자의식을 조절한다고 합니다. 퍼소나(Persona)를 의도적으로 다루는 것이죠. 여기서 퍼소나란 융 심리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사회적 상황에 맞게 외부에 내보이는 자아의 가면을 뜻합니다. 이걸 의식적으로 다룰 수 있을 때 자의식은 도구가 됩니다.

반면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그건 짐이 됩니다. 솔직히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화면 속 꾸며진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갭이 커질수록 불안과 피로감도 함께 커졌습니다. '남이 모르는 나의 어떤 부분이 있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그 균형을 찾는 일 자체가 에너지를 소진시켰습니다.

 

결론

도리언 그레이는 결국 초상화를 칼로 찌릅니다. 그리고 쓰러진 건 자신이었습니다. 내면을 외면한 채 껍데기만 지키려 했을 때 어떤 결말이 오는지, 와일드는 그렇게 끝을 냈습니다. 제가 SNS에 보정된 사진을 올리던 시절, 피로했던 건 사진 편집이 아니라 '완벽해야 한다'는 감각을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감각이 사라진 건 완벽해졌을 때가 아니라, 불완전한 현재의 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자의식 과잉이 고민이라면, 지금 당장 그것을 없애려 하기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한 권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어떤 인물에 감정이 실리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자의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질인지, 헨리 경인지, 아니면 도리언인지.

 

참고: https://youtu.be/I98gE1DW21w?si=pKrLZQWtjSkAxZyJ